인용문 577

안식일에 대하여

J. C. 라일이 당시의 교회를 향해 던진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당하다. 그는 "사람들이 안식일을 너무 엄격하게 지키는 것은 조금도 위험하지 않다. 오히려 안식일을 부분적으로 대충 지키는 것이나 아예 지키지 않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이 시대는 제4계명을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십계명에서 떼어내 없애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이런 경향을 경계해야 마땅하다. 18세기의 경험을 돌아보면 안식일이 잘 지켜지지 않는 곳에서는 절대로 살아 있는 믿음이 활성화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많이 발견된다."라고 말했다. 라이언 맥그로우, 예배의 날, 개혁된실천사, 209-210.

인용문 2019.12.02

안식일에 일하지 않는 이유-맥그로우

안식일의 목적은 무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바리새인들의 견해였다. 안식일에 직업 활동을 중단하는 이유는 그날 전부를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바치기 위해서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사실은 그날을 예배를 위해 따로 구별하셨다는 뜻이다. 안식일은 예배의 날이고, 직업 활동을 중단하는 것은 그날을 예배의 날로 지키기 위한 필요적 전제 조건이라고 결론지을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을 위해 하루를 따로 구별하는 목적이 곧 예배에 있다고 추정된다. 라이언 맥그로우, 예배의 날, 개혁된실천사, 51, 54.

인용문 2019.11.26

신앙과 신학공부-김남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생활 없이는 신학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경건하고 열렬한 신앙 없이 순수한 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참된 신학이야말로 성경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따르는 철저한 경건과 건전한 이성을 함께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구든지 신앙과 학문이 조화를 이룬 올바른 방법으로 신학을 공부하지 않는다면, 그는 반드시 자유주의자가 되거나 입술로만 개혁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런 잘못된 방식으로 신학을 끝까지 공부하게 될 떄, 경건의 비밀과 관계없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종파적 신학을 고집하게 됩니다. 그런 방식으로 하는 신학은 생명이 없는 이념의 체계를 답습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김남준, 신학공부 나는 이렇게 해 왔다. 생명의말씀사, 399.

인용문 2019.11.07

지식을 구하는 사람들-마스트리흐트

오로지 알기 위한 목적으로 지식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다.그것은 부끄러운 호기심이다.지식을 팔아먹기 위해서 지식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다.그것은 부끄러운 이득이다.유명해지기 위해서 지식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다.그것은 부끄러운 허영이다.반면에 다른 사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지식을 구하는 사람들도 있다.그것은 사랑이다.그리고 자신의 덕을 세우기 위해 지식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다.그것은 지혜로움이다. 페트루스 판 마스트리흐트, 이론과 실천신학, 부흥과개혁사, 68-69.

인용문 2019.11.04

설교자와 기도-로이드 존스

저는 우리가 다른 어떤 부분보다 이 부분에서 실패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설교자의 삶에서 지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여러 시대에 흩어져 살았던 가장 위대한 설교자들의 전기나 자서전을 읽어보면, 언제나 기도가 삶의 가장 큰 특징을 이루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예외 없이 위대한 기도의 사람들로서 상당한 시간을 기도에 바쳤습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든지 목회자, 즉 설교자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목회서신을 비롯한 성경 곳곳에서 계속 강조되는 바이며, 제가 말했듯이 오랜 교회의 역사, 특히 뛰어난 설교자들의 삶에서 충분히 확인되는 바입니다. 존 웨슬리는 매일 네 시간씩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또한 데이비드 브..

인용문 2019.10.18

설교단의 위치-로이드 존스

강단은 중앙에 있어야 합니다. 한쪽으로 밀려나서는 안 됩니다. 설교는 교회나 교회의 역할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행위이자 무엇보다 필요한 행위입니다. 그러니 강단을 중앙에 두십시오. 강단의 높이는 어느 정도가 좋을까요? 회중과의 관계에서 강단 높이를 제대로 조정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날에는 강단의 높이를 낮추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설계자들이 설교를 모르는 탓입니다! 오해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건축학적으로나 구조적으로 설교자가 항상 회중을 내려다보면서 설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강단은 언제나 적절한 높이에 설치되어야 합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설교와 설교자, 복 있는 사람, 252. 스데반의 생각강단이 중앙에 있어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한다. 오늘날 많은 경우에 설교단이 측면으로 ..

인용문 2019.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