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507

점진적 계시, 누구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에 대한 비밀이 점진적으로 성경을 관통하면서 드러난다. 그러나 또 다른 한 측면에서 볼 때 우리가 구약의 텍스트 안으로 들어가서 그 현장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어떠한가? 그 현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과연 복음을 희미하게만 보았고, 그들에게는 희미하게 드러난 것일까?  우리 기준에서 본다면 그러할지도 모른다. 즉 우리가 현재 알고 보는 복음의 광대함의 기준에서 보면 그렇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그런가? 구약 성도들에게는 복음이 희미했는가? 아닌 것 같다. 지금 내 판단으로는 아닌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구약의 성도들에게 복음은 지금 우리 보다 더욱 생생하고 현실적인 것으로 다가왔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구약의 방대한 기사는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로 휩싸여 있다. 구약..

신학산책 2021.07.10

진정한 목사

신대원 1년생 학도에게 권면한 내용 중 일부를 나눔으로 붙여본다. 나는 과연 그런 목사인가라는 성찰과 함께. ... 그래서 성경의 어떤 부분을 열어도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고 하나님 나라가 보이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보이고, 복음이 보이는 수준에 올라와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출발점 정도에 도착한 것입니다. 그것이 심장을 울려서 설교단에 서면 그리스도를 가장 웅장하게 드러내 보여야 합니다. 양들은 심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엄청난 수의 교회와 목회자와 미디어가 둘러싸고 있는 이 시대에 영적 굶주림은 매우 심합니다. 이 굶주림을 채우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는 것이 바로 목사의 소명입니다. 이런 목사가 되도록 준비해 나가야 합니다. 이런 목사는 희귀합니다. 그러나 이런..

신학산책 2021.07.08

신학하는 자의 자세-이동영

명심해야겠거니와, 우리의 신학은 도상에 있으며 아직 본향에 도착하지 못한 나그네의 신학이기에 부분적이고 미완성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신학은 하나님 자신의 신학(원형의 신학)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모방의 신학을 원형의 신학과 감히 비교해보면 그것은 터무니없이 빈곤하고 빈약하며 인간의 오류와 모순의 그림자가 드리운 불완전하고 불명료한 신학입니다. 그런 모방의 신학 속에서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현시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의 전문가인 한병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하나님 지식은 하나님 자신의 지식도 아니며, 천사들의 지식도 아니며, 하늘에 있는 의인들의 지식도 아니며, 그리스도 예수의 지식도 아니며....

개혁신앙 2021.07.07

[인용문]서로 사랑하자-맥칼럼

서로 사랑하자.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사랑하자. 예수님이 언제 자신을 우쭐대며 내세우셨던가? 우리 주님이 언제 자신의 고집을 내세워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적이 있었던가? 예수님이 언제 다른 이들을 모함하여 억울하게 했던가? 그렇지 않으셨다면, 우리도 그러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함에 있어서 탁월하도록 하자. 주님은 무시당하기 일쑤였던 어린아이들을 축복하셨으며, 힘없는 여인들과 가난한 이들을 보듬으셨다. 병든 사람들의 애절한 손길을 단 한 번도 물리치지 않으셨으니 그분은 약자들을 위해서만 당신의 능력을 행사하셨다. 그러니 우리도 이렇게 할 때만, 그분은 우리를 통해 열매 맺기를 기뻐하실 것이며,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더글라스 맥칼럼, "요한복..

개혁신앙 2021.07.07

[인용문]사랑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개혁신앙 2021.07.07

가슴 아픈 일들

어떤 목사님이 하신 얘기가 있다. 개혁주의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칼을 열심히 갈아서 사탄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주의자들의 목에 겨눈다고 말이다. 그러나 더 나아가 자칭 개혁파라고 하는 사람들이 다른 유형의 개혁파의 목을 겨누는 경우도 아직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일정한 장로교 신학 전통에 속해서 무슨 설, 무슨 주의, 어떤 사람을 따르고 그 노선을 유지해야 참다운(?) 개혁파로 인정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실 때 복음의 편만한 증거를 위해서 자신의 교회를 세워나가시는 방법은 우리 인간의 기준에서 이것이다 저것이다를 가지고 재단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개혁파는 보편적이며 복음주의 형제들을 언제나 사랑으로 품는 전제를 가진다. ..

신학산책 2021.07.07

[인용문]신학과 신학자-이동영

신학, 그중에서도 교의학 혹은 조직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질서 정연한 지식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지식의 추구는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신학이 담지하고 있는 가슴 사무치는 아름다움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너무 기이하고 높아서 우리는 그 지식에 도달할 수 없고(시 139:6) 지극히 부분적으로 알 뿐이지만(고전 13:9), 그럼에도 경이와 경탄 속에서 하나님에 관한 체계적인 지식을 추구합니다. 그러므로 신학을 하는 우리에게는 지극한 겸손함과 막중한 책임감이 요청됩니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지상에서의 신학을 "나그네의 신학"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여기에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일관되고 아름다운 신학체계를 세우기 원하는 사람은 혹시 자신이 세우고자 하는 신학체계가 신앙에 해를 끼치는 방향으로 작동하지는 않..

개혁신앙 2021.07.05

이사야의 기도(이사야 64장)-이스데반

지금 이 시대에 이만한 전 지구적 전염병이 돌고 있다면 교회가 깊은 회개 속으로 들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가 않습니다. 영과 진리의 예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과연 얼마나 많이 배교해 왔는지를 돌아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할 것인가라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반성과 회개와 성찰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외로운 선지자 이사야는 예루살렘의 황폐함 속에서 회복을 탄원하고 있습니다(사 64:8-12). 그러나 그 황폐함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이사야는 분명하게 직시하고 있습니다(사64:5-7). 그리고 구원받을 자격이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아버지시니까 도와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와 같은 간절함 속에서 탄원하고 탄식해야 할 때입니다...

신학산책 2021.07.04

회복

주일 설교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가능한 자주 꾸준히 말씀앞에 선다. 하나님을 만나고 알게되는 시간이 깊어지고 많아지는 것이 인간에게 행복인가 보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충만하게 회복되어 간다. 신대원을 시작한 한 사람에게 소명을 점검하라는 실제적인 조언을 간단하게 주었다. 아무도 그런 실제적인 조언을 준 사람은 없었다면서 감사하다고 한다. 내가 감히 신대원생에게 조언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인가? 내가 받아 누린 만큼 나도 훌륭한 예비 목사님들을 위해 내가 줄 수 있는 조언은 주어야 도리가 아닐까 싶다. 자신이 가야할 소명의 길을 따라 나아가리라 믿으며.

스데반의 걸음 2021.07.02